잊히지 않는 세기말의 파격. 패닉

에디션m

잊히지 않는 세기말의 파격. 패닉

2026.03.11
Special

잊히지 않는 세기말의 파격. 패닉

지금의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이적과 김진표는 각각 천재적인 재능의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MC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1990년대에 지적임과 불온함을 동시에 담아낸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인 팀, 패닉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에디션m은 두 아티스트가 묘한 합을 보여줬던 그룹 패닉, 그리고 이적과 김진표를 조명합니다.

지성에 불온의 코드를 더한 팀

1990년대 중반, 당대 패닉 음악의 주 소비층은 10대가 아닌 20대였습니다. 사회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가사, 그리고 청춘의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가 그 시절의 대학생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적과 김진표, 두 사람의 조합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만남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세련되고 지성적인 음악을 만들어 부르면서도, 그 안에는 문제의식을 덧댄 도발적인 메시지를 심어 놓곤 했습니다.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그들의 태도는 당시 '착한 가요'가 주류였던 음악계에서 확실히 남다른 면모가 있었습니다.

한편 이적은 직접 곡을 만들고 부르며 이후의 싱어송라이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아직 한국어 랩에 라임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랩에 본격적으로 라임의 개념을 도입한 김진표는 후대 한국 랩의 계보에서 그에게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했습니다. 팀 활동으로도, 그리고 개인 활동으로도 이 둘은 후대의 음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패닉의 시작, 1집

미리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이적은 일찍이 들국화 최성원에게 발탁되어 가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데뷔하기가 싫었던 그는 자신의 앨범이 거의 완성되었을 시기에 친분이 있던 동생 김진표에게 팀 합류를 제안했다고 하죠. 패닉의 역사는 그로부터 시작됐습니다. 1집에서 김진표의 존재감이 희미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활동은 첫술부터 배부르진 않았습니다. 1집 타이틀곡이었던 '아무도'는 사람들로부터 이렇다 할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라디오에서부터 잔잔한 트랙 '달팽이'가 열렬한 리퀘스트 받으며 상황에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기다리다'의 후반 흥행까지, 패닉은 1집을 발라드로 성공하며 음악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패닉 특유의 사회적인 시선은 1집에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왼손잡이'를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지금까지도 소수자들의 찬가로 기억되고 있는 이 곡은 당시 기준에서 발칙하고 반항적인 가사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곡리스트 4

패닉 사운드의 완성, 2집

팀의 색깔은 오히려 1996년의 2집, [밑]에서 만개했습니다. 초반부터 불쾌감을 조성한 신경질적인 사운드의 '냄새', 한국의 언론을 비유적으로 비판했던 '혀', 김진표가 학교와 가족에게까지 날카로운 시선을 겨누었던 '벌레'와 'Ma Ma'까지. 이들의 표현방법과 수위는 기성 가수들이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어릿 광대', 그리고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는 앨범에서 가장 크게 감정을 흔들어놓는 곡입니다. 현악과 꽹과리의 동시 사용, 그리고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 바뀌는 극적인 전개도 패닉이라 가능했던 음악적 장치들이었고요.

사회적인 메시지, 그리고 직설적인 표현법 때문에 당대에 논란을 부르며 방송 심의에서 잦은 제재를 받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는 오히려 두 아티스트의 당대 현실 인식과 반골 기질을 극단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덕분인지 국내에서 시대별 명반을 선정할 때마다 이들의 2집은 빠지지 않고 리스트업되고는 합니다. 본 앨범은 멜론이 기획하고 음악전문가들이 참여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리스트에서는 6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곡리스트 7

완숙한 사운드를 보여준 3집

각자의 프로젝트와 솔로 활동 이후 1998년 다시 뭉쳐 발표한 앨범입니다. 파격은 전에 비해 줄었지만, 음악적인 완숙함은 이 시기가 최고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중에서도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태엽장치 돌고래'가 특히 많은 애청을 받았습니다. 유년기에 대한 회고와 성찰을 담은 내면적인 가사는 세기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패닉과 함께 나이 든 오랜 팬들은 젊은 시기의 화가 담겨있는 1, 2집보다는 오히려 3집을 더욱 애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3집은 패닉이라는 팀의 개성은 유지하되,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들을 중심에 세운 앨범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곡리스트 4

마지막 앨범 4집

각자 치열하게 활동하다가 7년 만에 재결합한 두 사람. 서른 즈음의 원숙함을 바탕으로 음악적으로도 더욱 완성도 높은 노래들을 선보였습니다. '균열'과 같은 패닉만의 파격이 있는 곡도 주목받았지만,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정류장', 꿈을 향해 달리는 돈키호테를 낭만적으로 표현한 '로시난테'가 특히 너른 대중에게 애청을 받았습니다.

이 앨범에는 긱스 작업을 통해 이적과 연을 맺은 정재일이 편곡에 참여해 앨범의 완성도를 더해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앨범에서 들리는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태풍'과 '길을 내'에서 들리는 가스펠 풍의 편곡에서 그의 흔적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곡리스트 5

자기 세계를 계속 확정해나간 싱어송라이터: 이적

이적은 패닉 음악의 본격적인 설계자였습니다. 하지만 패닉 활동을 하지 않을 때면, 그는 긱스 활동과 솔로를 병행하며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작업물을 보여줬습니다.

여기에는 크고 작은 공연 활동은 물론 드라마와 예능 OST 참여, 그리고 방송 활동도 있었습니다.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이적이 유재석과 함께 곡을 만드는 장면이 방송을 타자, 그를 잘 몰랐던 이들까지 팬으로 포섭된 일화는 이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보다 많은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며, 그는 '1990년대 문제적 팀의 프런트맨'에서 '메인스트림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반경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지키면서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그는 현시대 싱어송라이터들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곡리스트 10

1세대 래퍼가 남긴 선구적인 족적: 김진표

한편 김진표는 스스로 자신의 음악은 힙합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초기 한국 랩의 형성과정에서 한국말 라임을 체계성 있게 도입한 그의 행보는 한국 힙합 신에서도 역사적 흐름을 다룰 때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게 합니다.

그의 솔로 1집 [열외 (列外)]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앨범 전체를 한국어 랩으로 채워 넣은 첫 번째 앨범이라는 역사적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다 자유로운 가사로 랩을 뱉은 2집, 그리고 패닉과의 연결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더욱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준 3집, 대중적인 접점을 확대해나간 4집 이후의 앨범들까지. 때로는 대중적이었고 때로는 시니컬했지만, 어떤 음악을 통해서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김진표의 음악적 지향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곡리스트 10

패닉 데뷔 30년

패닉의 역사는 결국 서로 다른 개성의 두 아티스트가 동시대의 공기를 함께, 또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해낸 과정이었습니다. 20대 청춘의 꿈과 불안,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의 회고와 성찰까지. 이들의 노래는 세기말의 분위기를 통과해 지금까지도 유효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패닉의 공연이 무려 20년 만에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공연은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고 하는데요. 1990년대에 진한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 그리고 경험치 못한 당대의 분위기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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